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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원포커 이용후기 덧글 0 | 조회 45 | 2023-05-31 19:24:16
라일락  
“허락해주시지요. 황후 폐하.” “그리하겠습니다. 잠시 물러나도록 하지요.” 하이원포커 황후가 질리언을 보았다. “내 유테르 공작에게 긴히 할 얘기도 있으니 잠시 차라도 함께 들도록 해요.” “예. 황후 폐하.” 모두가 황제의 침실에서 빠져나가고 문이 닫히자 레브는 예민하게 촉을 세웠다. 다행히 방 안에는 달리 감시하는 눈이 숨어 있거나 그러진 않았다. “후우.” 짧게 한숨을 쉰 레브는 잠시 눈을 감고 숨을 고르며 오데르의 힘을 끌어올렸다. 오데르. 신의 이름이면서, 신의 핏줄을 부르는 말임과 동시에 몸을 타고 흐르는 괴이한 힘의 정체. 그 힘을 잘 다루어보려고 노력해본 적은 없었다. 한 대에 한 명. 황제가 될 운명을 타고 태어날 오데르의 남자아이. 오라비인 마크시스가 오데르인데 제국사에 유례없게 그녀가 같은 힘을 가졌는지 레브 역시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궁금하다고 답을 들을 수 있는게 아니니 그러려니 하고 살아온 세월이 길었다. ‘일레온이 시도해보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아들은 그녀보다 힘을 온전히 다룰 수 있었다. 하지만 예언서를 거스르며 엘리시아를 보호하느라 일레온의 몸에 예전처럼 활력이 돌지 않는 것이 느껴졌다. ‘분명히 이런 식으로 했지.’ 레브는 손바닥을 위로 가게 허공에 들고 잠시 집중했다. 그러자 빛이 나는 작은 구체가 허공에 떠올랐다. ‘어떻게 되긴 하는군.’ 오데르의 힘을 다루는 법은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졌다. 사람이면서 사람이 아닌 자. 신의 비밀을 지키는 방법이었다. 어린 시절 레브도 선황제로부터 놀이처럼 이 힘을 다루는 법을 배웠다. 소드마스터란 것 역시 별것 아니었다. 오데르의 힘을 검에 밀어 넣는 것만으로 검기를 내고 무인으로 개화할 수 있었다. 때로는 이 힘만으로도 방패를 만들 수도, 또 연습하기에 따라서 날카롭게 무기처럼 쓰거나 날릴 수도 있었다. 그걸 눈을 뜨고도 사랑에 눈이 먼 것 같은 아들은 제 여자의 몸에 갑옷처럼 둘러주었지만 말이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오데르는 하나의 힘이라는 것이었다. 선황제의 몸에 흐르는 힘과 제 몸에 흐르는 기운은 물과 같았다. 한 곳에서 뿜어나온 원천수처럼, 잠시 떠올렸다가 도로 흘려보내도 티 나지 않게 본래의 하나가 되는 물처럼. 힘을 품은 사람이 다르다고 하여 다른 기운을 띠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서로의 몸에 있는 기운을 공놀이하듯 주거니 받거니 하며 노는 것처럼 힘을 다루는 법을 배웠고, 레브 역시 일레온에게 같은 방법으로 가르쳤다. ‘그러고 보니 오라버니와 해 본 적은 없었군.’ 레브는 손바닥 위에 주먹만 하게 모인 힘을 슬며시 마크시스 황제의 가슴 중앙에 내려놓았다. 약이나 무엇으로도 그를 깨울 수 없다 해도 만약 마크시스 황제가 정말 다른 오데르보다 조금 일찍 기력이 쇠한 것뿐이라면 레브의 힘에 반응할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그녀의 정기를 불어넣는 것만으로 우화하듯 깨어날 가능성이 높았다. “어?” 하지만 다음 순간 레브는 깜짝 놀랐다. 제 손을 떠난 빛 뭉치가 마크시스 황제의 몸에 닿자 흡수되지 못하고 폭발하듯 잔영을 남기며 허공으로 사라졌다. “말도 안 돼.” 레브는 허둥지둥 황제의 코 아래에 손가락을 대어 그가 숨을 쉬는지 확인했다. “살아 계시거늘.” 오데르의 힘이 몸에 흡수되지 못하고 이런 식으로 흩어지는 건 딱 한 경우뿐이었다. 임종을 맞았을 때. 선황제도 그녀와 힘을 주고받으며 넌지시 일렀다. 「아비가 신좌의 곁에 가는 날에는 이 놀이를 할 수 없단다.」 「왜 못 해요?」 「오데르께서 우리를 부르신다면 더는 몸에 힘이 남지 않기 때문이란다.」   오데르끼리 죽음을 확인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돌아가신 선황제의 가슴에 오데르의 힘을 뭉쳐 내려놓았을 때 그녀는 ‘놀이’가 끝난 것을 알았다. 선황제가 알려준 그대로였다. “아직 살아계신데 어째서 이렇지?” 마크시스 황제의 몸이 제힘을 튕겨낸 것이 당혹스러웠다. 선황제의 죽음과 나란하던 기억이 살아 있는 그에게서 반복된 것 모두 충격이었다. 그때였다. “이게…… 뭐지?” 호흡을 살피느라 숙인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황제의 목덜미에서 시선을 잡아끄는 것이 있었다. “렌즈인가?” 렌즈는 흔히 눈 색을 가리는 데 사용되었다. 지위가 높은 왕족이나 귀족들은 가문의 특징을 색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일이 많았다. 혹 신분을 감추고 여행이나 멀리 출타를 하게 될 때 눈 색과 머리 색만으로도 신분이 탄로 날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어느 때부턴가 의안을 제작하는 장인들이 세공품으로 눈동자 색을 가릴 렌즈를 만들곤 했다. 눈에 직접 닿는 물건이니만큼 제작하기 까다롭고 기술이 필요한데다 수요가 아주 많은 물건도 아닌지라 구하기도 어렵고 대단히 고가였다. 그녀 역시 보자마자 오데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붉은 눈동자를 가리기 위해 검은 렌즈를 써 본 적이 있었다. 렌즈를 끼고 밖에 나간 날은 무척 즐거웠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오데르’라거나 ‘레브 전하’라고 외치는 이들이 지운 듯 사라졌다. 그런 일탈의 순간 중 어느 날 남편을 만나기도 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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